"홍사덕 의원 사망 숙환으로 별세"

시사,연예|2020. 6. 18. 05:31

홍사덕 국회의원 사망 숙환으로 별세, 홍사덕 업적 근황

 

 

홍사덕 의원 프로필

 

출생 생년월일 1943년 3월 5일

홍사덕 나이 만77세


고향 경상북도 영주시


홍사덕 사망 2020년 6월 17일 (향년 77세)


본관 남양 홍씨


재임기간 제16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2000년 6월 5일 ~ 2001년 6월 4일

가족 집안 부모님
배우자 홍사덕 부인 아내 임경미


홍사덕 자녀 슬하 1남 2녀


홍사덕 종교 개신교


홍사덕 학력

영주초등학교 (졸업)
영주중학교 (졸업)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외교학 / 학사)


병역 대한민국 해병대 병 130기


소속 정당 무소속


의원 선수 6


의원 대수 11, 12, 14, 15, 16, 18


경력

중앙일보 기자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롯데 평화건설 기획실장
신한민주당 대변인
제11, 12, 14~16, 18대 국회의원
민주당 부총재
정무제1장관
제16대 국회 상반기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원내총무
친박연대 선거대책위원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지금 잠이 옵니까?로 유명한 16대 국회에서 국회부의장을 지낸 홍사덕 전 국회의원이 17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습니다. 사망당시 나이 향년 77세였습니다. (숙환 뜻은 오랫동안 앓은 병이란 의미입니다.)

 

 

 

홍사덕 의원 사망 원인은 폐렴이라고 하는데요. 고 홍사덕은 최근 폐렴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홍사덕 의원은 1981년 제11대 민주한국당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18대까지 6선을 했는데요.

 

 

 

홍사덕 의원은 1992년 대선에서는 민주당에서 김대중 후보 캠프 대변인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정무 제1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고 홍사덕은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후에는 명실공히 친박(친 박근혜)계 좌장으로 자리매김했는데요.

 

 

지난 2007년과 2012년 잇따라 '박근혜 경선캠프'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선봉에 섰던 홍사덕 의원입니다.

 

 

 

"홍사덕 불법 정치자금 의혹"

 

홍사덕 의원은 2012년 9월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으로 새누리당을 전격 탈당하기도 하면서 사실상 정계 은퇴 수순을 밟기도 했는데요.

 

 

당시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선 캠프의 '투톱' 격이었던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과 홍사덕 의원과의 내부 갈등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홍사덕 의원 과거사진 김을동 의원과 아들 송일국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홍사덕 의원 고 노무현 대통령 앙숙"

 

고 홍사덕 의원은 앞서 2004년 한나라당 원내총무로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했고, 이후 이른바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낙선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실제로 홍사덕 의원은 2004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같다고 말하는 것은 김 전 대통령에게 큰 결례다.”며 이야기 했는데요.

 

 

 

당시 홍사덕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북한의 개혁 개방 자유화 민주화를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서는 이를 찾아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며 “김대중 전 대통령은 통일 후에도 한반도에 주한미군이 필요하다는 말을 할 정도로 한미안보에 대해 확고한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철학도 신념도 없이 한미 관계를 망가뜨렸다." 라고 이야기 했는데요.

 

 

 

또 홍사덕 의원은 "이라크 추가파병도 일본은 미국의 신뢰를 얻고 파병시간을 벌었으나, 우리 정부는 미국 기분을 상할대로 상하게 해놓고 보내는 시기는 일본과 같지 않느냐”고 당시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이렇게 홍사덕 의원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주도하고, 그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기도 고양시 일산구 갑(현 일산동구) 지역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열린우리당 한명숙 후보에 밀려 낙선하며 대중들에게 잊혀져 갔으며, 18대 총선에서는 친박연대 후보로 나서서 당선됐으나 19대 총선에서는 서울 종로에 도전했다가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정세균 국무총리에 패하며 정치인생을 마감했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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